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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A Engine Note

8. 강하다, 약하다 너머에 값이 있을까

by 夢遊 2026. 6. 15.

[MRA 엔진 노트 흐름]
프롬프트 → 프로파일/가중치 → 실행 로직 → 데이터/계산 → 검증/MRA 엔진 → AI 문장화

현재 위치: 제2부 프로파일 변천사와 실행 로직의 시작


어느 날의 화면

MRA는 Myeongri Reasoning Analyzer의 줄임말이다.
명리(命理) 판단의 흐름을 추적하고,
그 근거를 다시 검토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 붙인 이름이었다.

하지만 MRA는 완성을 향해 곧장 나아간 프로젝트라기보다,
흔들리는 판단을 하나씩 밖으로 꺼내 보는 과정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AI의 문장이 흔들렸다.
그다음에는 프롬프트의 지시가 흔들렸다.
순서를 적고, 금지 규칙을 붙이고, 출력 형식을 정해도
판단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았다.

물론 기준을 밖으로 꺼낸다고 해서 곧바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는 가중치가 너무 강하게 작용한 적도 있었고,
충을 중복으로 반영한 적도 있었고,
조후와 억부의 우선순위가 서로 부딪힌 적도 있었다.
AI가 계산해야 할 것과 엔진이 계산해야 할 것을
다시 나누어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뒤에서 다시 다루게 된다.

이 글에서 남겨 두고 싶은 것은
그 많은 교정이 시작된 자리다.

강하다, 약하다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득령과 득지는 같은 힘으로 볼 수 없었고,
통근의 깊이와 십이운성의 상태도 같은 무게로 처리하기 어려웠다.

그 불편함에서 시작된 감각이
처음으로 프로파일이라는 구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 머리를 떠나지 않던 질문

1부에서 다룬 시간은 주로 프롬프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던 시기였다.

역할을 주고,
순서를 적고,
표를 만들고,
JSON처럼 보이는 출력 형식을 요구했다.

그러면 화면에는 어느 정도 정돈된 답변이 나왔다.
AI는 명리 용어를 알고 있었고, 사주(四柱)를 설명하는 문장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계속 남았다.

AI는 “신강하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신약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월령을 얻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
“통근이 약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 말들이 얼마나 다른지였다.

득령한 힘과 득지한 힘이 같은가.
월지의 힘과 시지의 힘이 같은가.
일간(日干)이 건록에 앉은 것과 절지에 놓인 것이 같은가.
본기에 통근한 것과 중기나 여기에 걸친 것이 같은가.

말로는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그 차이를 다시 검토하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화면의 관심은 문장에서 값으로 조금씩 옮겨 갔다.


무작정 부딪혀본 기록

처음부터 세련된 모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판단 항목들을 나누어 보았다.

득령은 어느 정도의 힘인가.
득지는 어느 정도의 힘인가.
월간, 시간, 연간, 시지는 각각 얼마나 반영해야 하는가.
본기, 중기, 여기는 같은 통근으로 보아야 하는가.
충을 맞은 뿌리는 얼마나 깎아야 하는가.
관살의 압박은 일간의 힘을 어느 정도 눌러야 하는가.

처음에는 숫자 자체가 어색했다.

명리를 계량화한다는 것은 오해를 사기 쉽다.
사람의 삶을 점수로 재겠다는 뜻처럼 보일 수도 있고,
명리의 복잡한 판단을 단순한 계산표로 줄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려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강하다, 약하다라는 말을 믿을 수 없어서 숫자를 붙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말을 더 검토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숫자를 붙여 보려 한 것이다.

“신강”이라고 쓰면 그 말은 하나의 결론처럼 보인다.

하지만 득령, 득지, 위치, 통근, 충, 조후, 구조를 나누어 값으로 적으면
어느 부분이 강했고, 어느 부분이 약했는지 다시 볼 수 있다.

값은 정답이 아니라 흔적이었다.

그때의 가중치는 완성된 이론이 아니었다.
다만 판단 과정을 밖으로 꺼내 다시 보기 위한 첫 번째 표시였다.


말만 번지르르한 AI 앞에서 느낀 벽

AI에게 “근거를 적어라”라고 하면 근거처럼 보이는 문장이 나왔다.

월지가 목을 도우므로 일간이 힘을 얻는다.
지지에 뿌리가 있으므로 신강 쪽으로 본다.
관살이 강하므로 압박이 크다.
식상이 있으면 관살을 제어할 수 있다.

이런 문장들은 틀렸다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명리적으로 가능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얼마나 도운 것인가.
얼마나 눌린 것인가.
그 힘은 월령(月令)에서 온 것인가, 지지의 뿌리에서 온 것인가.
충을 맞은 뒤에도 같은 힘으로 보아야 하는가.
십이운성의 상태는 단순한 설명인가, 실제 강약에 반영되어야 하는가.

AI는 이런 질문에 대해 다시 문장으로 답했다.

그러나 문장이 늘어날수록 검토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말이 길어질수록 판단은 그럴듯해졌지만,
그 판단을 다시 확인할 기준은 흐려졌다.

여기서 프롬프트의 한계가 한 번 더 드러났다.

프롬프트는 AI에게 신중하게 말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중함의 기준을 매번 같은 방식으로 적용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프롬프트는 AI에게 근거를 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근거가 실제 계산 가능한 값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바뀌었다.

AI에게 어떻게 더 잘 설명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설명하기 전에 어떤 판단 재료를 먼저 만들어 둘 것인가.


생각의 궤도를 수정하다

이때 도입한 것이 프로파일이라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가중치표에 가까웠다.
득령은 어느 정도 크게 보고,
득지는 그다음 축으로 두고,
위치와 통근은 차등을 두며,
충을 맞은 곳은 감쇠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문제는 단순히 숫자를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명조(命造)를 자평 표준으로 볼 것인가.
조후를 더 중시할 것인가.
화격이나 종격 같은 특수 구조를 먼저 볼 것인가.
양인격에서 관살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억부와 조후가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하나의 숫자표로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중치는 프로파일이 되어야 했다.

프로파일은 단순 설정 파일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어떤 관점을 우선할 것인지,
어떤 값을 크게 볼 것인지,
어떤 경우에는 감쇠할 것인지,
어떤 기준을 넘으면 경고할 것인지가 들어갔다.

말하자면 프로파일은 MRA가 명리를 보는 방식의 기준 초안이었다.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정답이라고 믿을 수 없으니 밖으로 꺼냈다.
밖으로 꺼내야 비교할 수 있고,
비교해야 고칠 수 있고,
고치려면 버전이 남아야 했다.

이때부터 MRA의 기록은 단순한 프롬프트 수정 기록이 아니게 되었다.

판단 기준을 어떻게 밖으로 꺼냈는가.
그 기준을 어떤 파일로 남겼는가.
그 값이 왜 바뀌었는가.
바뀐 뒤에는 어떤 결과가 달라졌는가.

이 질문들이 프로파일 변천사의 중심이 되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당시에는 선행 연구를 참고한 상태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그저 AI의 그럴듯한 문장 앞에서
강하다와 약하다라는 말만으로는 판단을 다시 검토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득령과 득지, 통근과 충, 조후와 구조의 차이를
어딘가에는 따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비슷한 문제의식은 이미 있었다.

국내에는 사주오행의 역량을 계량화하려는 연구가 있었고,
십성의 역량을 수치화하려는 논의도 있었다.
중국권 실무 자료에도 일간 왕쇠를 점수법으로 판단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그러니 MRA의 가중치 발상을
전례 없는 발명처럼 쓸 수는 없다.

다만 그 자료들을 보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프롬프트의 한계 앞에서
강약 판단의 기준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닿아 있었다.

뒤늦게 확인한 선행 자료들은
그 질문이 완전히 엉뚱한 곳에 있던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MRA에서 중요했던 것은 점수 자체가 아니었다.

값을 정답처럼 믿는 것이 아니라,
값을 밖으로 꺼내 검토하고,
필요하면 바꾸고,
바꾼 흔적을 남기는 구조가 더 중요했다.

그것이 MRA에서 프로파일이 생긴 이유였다.


공개할 것은 숫자보다 방향이었다

프로파일의 모든 값을 그대로 펼쳐 보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값보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은
그 값을 밖으로 꺼내야겠다고 느낀 이유였다.

득령을 크게 보아야 한다는 생각,
득지를 그다음 축으로 두어야 한다는 생각,
통근의 깊이와 충의 흔들림을 다르게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나누고,
어떤 구조로 남기고,
어디까지 검토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는 각자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수치 자체보다
프로파일이라는 생각이 왜 필요해졌는지를 남기려 한다.


지금 돌아보면

지금 돌아보면 이 글의 자리는 중요하다.

1부가 프롬프트의 한계를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그 한계가 어디로 넘어갔는지를 다루어야 한다.

그 다음 자리는 곧바로 엔진이 아니었다.

먼저 프로파일이었다.

프롬프트 안에 있던 판단 기준을 밖으로 꺼내고,
말로만 있던 강약 감각을 값으로 적어 보고,
그 값이 흔들리면 고칠 수 있게 만드는 일.

이것이 MRA가 엔진으로 가기 전에 지나간 중요한 단계였다.

프로파일은 단순한 설정 파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판단 기준을 문장 밖으로 꺼낸 첫 형태였다.

AI에게 “월령을 중시하라”고 말하는 것과
프로파일 안에서 월령의 비중을 따로 관리하는 것은 다르다.

AI에게 “충을 고려하라”고 말하는 것과
충을 받았을 때 어떤 항목을 얼마나 감쇠할지 남기는 것도 다르다.

AI에게 “조후를 보라”고 말하는 것과
조후 중심 프로파일을 따로 두는 것도 다르다.

이 차이가 MRA를 프롬프트 실험에서 엔진 쪽으로 밀어냈다.

프롬프트는 말을 요청했다.
프로파일은 기준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준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다시 검토하기 위한 임시 좌표였다.


부록 A. 초기 가중치 설계의 흔적

A-1. 당시 흐름을 정리한 형태

판단 항목 당시 떠오른 질문 프로파일로 옮길 때의 의미
득령 월령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일간 강약 판단의 큰 축
득지 지지에 뿌리가 있는가 일간이 버틸 기반
위치 월지, 일지, 시지, 연지는 같은가 자리별 영향 차이
통근 본기, 중기, 여기는 같은가 뿌리의 깊이 차이
투출 천간에 드러났는가 작용의 외현성
뿌리나 구조가 흔들리는가 감쇠 또는 위험 신호
십이운성 상태 이름인가, 힘의 차이인가 상태값 또는 보조 가중치
조후 한난조습이 우선되는가 억부와 별도의 판단 축
격국 구조가 어떻게 잡히는가 SSI 판단의 중심
용신 후보 무엇을 쓸 것인가 USI 판단의 중심

당시 의도

  • 신강·신약 판단을 말로만 두지 않고, 검토 가능한 항목으로 나누려 했다.
  • 득령, 득지, 위치, 통근, 충, 조후를 같은 무게로 보지 않으려 했다.
  • AI가 결론을 만들기 전에 엔진이 참고할 판단 기준을 밖으로 꺼내려 했다.

남은 문제

  • 숫자가 곧 정답은 아니었다.
  • 항목을 더하면 중복 가점이 생길 수 있었다.
  • 월령과 통근, 조후와 억부, 격국과 용신이 서로 충돌할 때 우선순위가 필요했다.
  • 어떤 값이 적절한지는 실제 사례와 반례로 검증해야 했다.

다음 변화

  • 단순 가중치표는 프로파일 구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 프로파일은 BSI, SSI, USI를 나누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 여기서 BSI는 일간 강약과 기세를 보는 축, SSI는 격국과 구조의 성패를 보는 축, USI는 용신 후보와 쓰임의 방향을 보는 축으로 정리되어 갔다.
  • 이후에는 이론 기반 프로파일과 실제 엔진용 production 프로파일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부록 B. 초기 프로파일은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초기 프로파일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판단 기준을 바깥으로 꺼낸 설정값에 가까웠다.

다만 그 값들은 아무렇게나 붙인 숫자는 아니었다.

당시의 생각은 단순했다.

명리에서 일간의 힘을 볼 때 월령을 가장 먼저 본다면,
득령은 가장 큰 축이어야 했다.
하지만 월령만으로 모든 판단이 끝나는 것은 아니므로,
득지는 그보다 낮지만 여전히 중요한 두 번째 축으로 보아야 했다.

월간은 월지와 가까워 계절의 기운을 비교적 직접 드러내는 자리로 보았다.
시간과 시지는 일간과 가까운 자리이지만,
월령만큼 전체 계절을 대표하지는 못한다고 보았다.
연간과 연지는 배경의 힘은 있으나 직접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았다.

통근도 단순히 있다, 없다로 끝내기 어려웠다.

본기에 통근한 것은 가장 깊은 뿌리로 보아야 하고,
중기는 그보다 약하며,
여기는 더 약하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충을 맞은 뿌리는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뿌리가 있더라도 충을 받아 흔들리면
그 힘은 줄어든다고 보아야 했다.
그래서 충은 가산점이 아니라 감점이나 감쇠 규칙으로 두었다.

이 값들은 정답표가 아니었다.

무엇을 더 크게 보고,
무엇을 보조로 보며,
어떤 경우에 힘을 줄일 것인가를 표시한 첫 기준이었다.

초기 프로파일의 실제 형태는 대략 이런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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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i_weights
deukryeong
deukji
positional weights
root clash penalty
ssi_efficacy_weights
tuchul score
tonggeun score
clash penalty ratio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판단 기준이 프롬프트 밖으로 나왔다는 점이었다.

밖으로 나온 값은 비교할 수 있었다.
비교할 수 있는 값은 바꿀 수 있었다.
바꾼 값은 버전으로 남길 수 있었다.

프로파일 변천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부록 C. 선행 자료에 대한 현재 메모

당시에는 참고하지 못했지만,
뒤늦게 확인해 보면 명리 판단을 계량화하려는 시도는 이미 있었다.

국내에는 사주오행과 십성의 역량을 계량화하려는 논문들이 있고,
중국권에는 일간 왕쇠를 점수법으로 판단하려는 실무 자료들이 있다.

이 자료들은 MRA의 출발점이라기보다,
MRA가 혼자 부딪힌 질문이 완전히 허공에 있던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참조점에 가깝다.

다만 MRA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점수표를 그대로 가져오는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음 질문이다.

강약 판단의 암묵값을 어떻게 밖으로 꺼낼 것인가.
그 값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게 만들 것인가.
바꾼 값이 결과에 어떤 차이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남길 것인가.

이 질문이 프로파일 변천사의 중심이 된다.


노트 한 줄 요약

MRA의 프로파일은 점수를 믿어서가 아니라, 강하다와 약하다라는 말을 검토 가능한 기준으로 꺼내기 위해 생겨났다.


다음 글

다음 글에서는 득령과 득지가 왜 같은 힘일 수 없었는지, 그리고 월령·통근·위치값을 나누어 보려 했던 초기 프로파일의 구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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